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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 리더의 감정 (불안)

July 5 2023

리더에게 감정은 유용한* 것인가?

*질문이 적절한가?
상담사와 회사 임원간의 인터뷰 [리더의마음 105~107p] 상담사 : 무슨 일을 하십니까? 임원 : 데이터 처리 부서에서 일합니다. 상담사 : 업무에 대해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임원 : 나는 그 장소를 좋아합니다. 사무실이 좋고 비교적 큰편이죠. 모퉁이에 있어서 햇빛이 잘 듭니다. 상담사 :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어떠세요? 임원 : 별로 할말이…. 그들에 대해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상담사 : 더 큰 책임을 맡아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임원 : 잘 모르겠습니다. 제 밑에서 일하던 동료 중 한명이 최근에 부서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상담사 :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나요? 당신 부하였으니까요. 임원 : 아닙니다. 그 일로 한 숨 돌렸습니다. 상담사 : 아내와의 관꼐는 어떻습니까? 임원 : 좋습니다. 우리는 결혼한지 15년 되었습니다. 상담사 : 둘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나요? 임원 : 아내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상담사 :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나요? 마음이 아팠나요? 임원 :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내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을때, 괜찮다고 말해줬습니다. ….지금 대화는 쓸데없는 짓 같아요. 모두 감정 이야기인데 중요한 건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상담사 : 지금은 아내와 관계가 어떻습니까? 임원 : 가끔 이유없이 내게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상담사 : 아내가 왜 화가 났는지 알아냈나요? 임원 : 아니요. 상담사 : 자녀가 있습니까? 임원 : 예 상담사 : 자녀들에 대해 좀 이야기 해줄수 있습니까? 임원 : 아들과 딸이 한명씩 있습니다. 아이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상담사 : 당신은 요즘 어떻습니까? 임원 : 3년 정도 전 부터 속이 쓰린 증상이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졌는데 특정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덜 아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궤양 천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약을 먹으면서 식단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상담사 : 집에서는 주로 무엇을 합니까? 임원 : 텔레비전을 봅니다. 상담사 : 마지막에 봤던 프로그램이 무엇입니까? 임원 :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게 보고나서 내용을 바로 까먹는 편입니다. 상담사 : 꿈을 꾼 적 있습니까? 임원 : 아니요 상담사 : 공상에 잠기거나 환상 속에 빠져든 적이 한번이라도 있습니까? 임원 : 기억나지 않습니다. 상담사 :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임원 : 없습니다. 상담사 : 어떤 일에 흥분한 적이 있습니까? 임원 : 없습니다. 상담사 : 이곳에 있는 것이 힘듭니까? 임원 : 회사에서 이곳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상담사 : 지금 무슨 생각이 듭니까? 임원 : 모르겠네요..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길 바랍니까?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설명하기 힘드네요. 나는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위 임원이 조직에서 상당히 그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이고 가정해 보지요. 실제로도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데이터 처리 업무를 맡고 있는 엔지니어 관리자이자 자신의 사무실을 잘 떠나지도 않을 것이고 즉흥적인 일탈이나 감정 기복이 그리 있지도 않을 테니까요. 다만 현재 자리에서 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리로의 승진은 어떤 이슈가 있어보입니다. 자신 보다 후배 직원이 먼저 부서장에 승진을 했고 조직에서 이런 상담을 권유한 것을 보면 분명 어떤 이슈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위 임원에게 어떤 이슈가 있어 보입니까? 이슈가 있다면 그 이유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감정표현불능증상

케츠 드 브리스는 위 사례를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루고 있습니다. 위 임원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서 “의미”를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자신이 관계와 상황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 감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경험되는지를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표현불능은 언어능력 또는 감정 인식 능력의 문제다?
처음 이 개념을 다룬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언어능력의 문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언어 개념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단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죠. 또한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공감인지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어야 할 감정과 표현의 선택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는 더 나아가 개인의 인지 능력과 신경 해부학적 이슈로까지 나아가기도 합니다. 거울 뉴런이라 불리는 신비한 공감 인지 신경 구조에 어떤 이상이 있거나, 뇌에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특정 부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우리가 보통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정이지요.
위와 같은 가정들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어떤 물리적 구조와 같은 것이며 그것의 정상적 기능이 방해 받을 때 감정표현불능과 같은 증상이 생겨난다고 보는 관점이지요.
물론 뇌기능에 이슈를 완전이 배재할 수 없겠지요. 다만 저는 이것이 단지 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보다 일반적인 경우, 뇌의 기능이나 구조에는 아무런 이슈가 없는 경우에도 위와 같은 증상은 흔하게 보일 수 있고, 어쩌면 오늘날 정상인이라 불리우는 신경증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마음의 구조라고 보는 편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모두 감정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지요. 특히 자신을 괴롭히는 특정 관계나 감정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에게 공통된 경험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우리는 좋은 관계의 본보기나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서 처세와 같은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배우고 따라하고 싶어합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괴이한 감정과 생각들을 억지로 억지로 누르면서 말이죠.
케츠 드 브리스의 리더의 마음은 감정표현불능 증상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회사원”의 정체성과 연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책에 인용된 내용들입니다.
에리히 프롬, 정체성이 불안정하고 유난히 피상적이며 변화무쌍하다.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연기해야 할 여러 역할의 총합처림 보인다. 시장지향성의 전제는 공허함이다. 불변을 욕망하는 것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불변의 자기성은 언제가 시장의 변화요구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맥코비, 조직의 목표와 이상을 자기 내면화시켜 그 힘을 더하기 때문에 회사원은 조직과 사업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직과 권위에 대한 순종적인 굴복, 권력자에 대한 감상적인 이상화, 안전, 편안함, 사치를 얻기 위해 자아를 배반하는 경향 등 부정적인 의존증상을 강화할 수 있다. 조이스 맥두걸, 반갑지 않은 지식이나 판타지, 혼란스런 외부 영향들에 대해 일종의 심리적 관리를 하는 대신에 자아는 관련된 감정이나 표현을 결국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이는 내면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결과로 외부세계에 대한 초적응, 내부와 외부의 압력에 대한 로봇 같은 대응이 나타나고 상상의 세계는 단절된다. 이런 “사이비 정상성”은 널리 퍼진 성격 특성이 됐고 심리학적 문제에 따른 예기치 못한 사태를 예고하는 위험신호 일 수도 있다.
오늘은 감정을 대하는 각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에 대해서… 사람들 앞에서 나에 “관해” 말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말하는 것 ”싫어하는” 사람에게 “싫어하는” 감정을 말하는 것 ”알 수 없는 나”를 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진지할 말을 하는 것, 가벼운 말을 하는 것, 불편한 것, 편한 것, 욕망을 위해 말하는 것, 욕망을 말하는 것 ……
감정은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야!
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마치 어떤 상황에 또는 어떤 자리에 적합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보편적인 감정이 먼저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그것은 인식하는 신체적 조건을 문제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신경심리학의 최신 연구는 감정의 그러한 실체성에 의문을 갖습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신경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베럿 (Lisa Feldman Berret)입니다.
심리학 및 신경과학 분야의 혁신적인 연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과학자 중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신경과학자다. 노스이스턴대학교의 석좌교수이자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도 재직 중이며, 하버드의대 ‘법·뇌·행동센터The Center for Law, Brain & Behavior’의 수석과학책임자CSO다.
2019년 신경과학 분야에서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을 받았으며, 뇌와 감정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국립보건원 파이어니어상NIH Director’s Pioneer Award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등이 있으며 『정서 편람』 『정서의 심리적 구축』 『맥락 속 마음』 『정서와 의식』 등의 학술서를 공저했다.
베럿 박사는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인 실체가 아닌 ‘실재하는 세계와 의미를 생산하는 (병*에 걸린) 인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경험이자 기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병이라는 표현은 베럿 박사의 표현은 아니고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언어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인간 만의 특수한 마음의 구조를 정신병이라고 표현한 자크 라깡의 생각을 적용해 본 것임
감정이 인간이 만든 경험(구성적 경험)이자 기능이라는 주장은 익숙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베럿의 논리를 따라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1) 뇌의 존재 목적은 생각이 아니라 신체 예산의 관리다.
뇌과학은 뇌의 작동 방식이 신경망의 네트워크로 비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고전적인 상식에서는 뇌의 특정 영역이 특정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좌뇌, 우뇌의 구분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뇌는 특정 영역의 기능이 구분된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의 네트워크가 특정 목적을 위해 구조화되는 과정에서 고착되기도 변형되기도 하는 식으로 기능한다는 것이 최근 뇌과학 연구의 결론이지요.
이러한 신경망 작동의 핵심 목표는 신체예산의 관리입니다. 즉 생물학적 항상성 유지를 위한 에너지 자원의 관리와 생리활동의 조절이 뇌의 본질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생물의 뇌는 신체예산관리를 위해 “예측”이라는 신경망의 폐쇄적이고 잠정적이 구조화 전략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능한 작동방식이기 때문이지요
(2) 신체 예산 관리의 최적화 전략은 예측과 범주화다.
리사 펠드먼 베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생각연구소 p.133
신체가 마주하는 세계는 완전히 개방되고 무한한 변화와 자극이 흘러 넘치고 있지요. 우리가 매순간 무한대의 자극과 변화를 수용하며 생리적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인간은 단 1시간도 깨어있지 못하거나, 매순간 에너지 공급을 위해 끊임없이 먹어 댈 것입니다. 수명은 아마도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겠지요. 뇌는 이러한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신경망의 구조화 - 예측이라는 전략을 취합니다.
유투브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생각해 봅시다. 동영상 스트리밍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전부 실시간으로 전송하려고 한다면 어마어마한 통신망이 필요합니다. 5G로도 어림없을 겁니다. 하지만 영상의 변화되는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전송하고 나머지 대다수의 정보는 이미 송신되어 저장된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데이터 전송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겠지요.
뇌가 세계의 무한한 자극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이와 유사합니다. 자극을 받으면 뇌는 재빠르게 그 자극에 적합한 신체활동을 위한 신경망의 구조 유형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인 자극이 발생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이미 만들어진 신경망 구조를 통해 자극을 해석하고 반응하지요. 이런 뇌의 구조화망 구성을 내수용성이라고 부릅니다.
핵심은 뇌가 세계와 상호작용 하는 방식이 실시간이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특정 시나리오(예측)에 따라 대부분 정해지고 디테일한 부분의 오류가 수정되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뇌는 예측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을 최소화하려고 하며 예측의 유지를 위해 새로운 자극을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예측을 통한 지각(상상의 시뮬레이션)은 신체적 반응을 불러옵니다. 그것은 일종의 몸의 느낌으로서 뇌의 예측 구성의 일부가 됩니다.
(3) 예측과 범주화의 파생물로서 감정이 생산된다.
뇌는 결국 신체예산관리를 위한 예측(신경망 구조화)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측의 신경망 구조화가 어떻게 감정을 구성하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문제입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우선 감정의 정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은 무척 다양합니다. 문화마다 서로 다른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도 같지 않습니다. 결국 모두가 자신만의 감정 사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샤덴프로이데?
리제트(LIGET)
이러한 감정의 다양성은 오히려 감정이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의심하게 해줍니다. (감정 실재론, 감정은 외부의 세계의 실체 또는 우리 신체의 내면적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관점) 즉 언어로 표현된 수많은 감정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개념적 허구로 마치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나의 우울감은 당신의 우울감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우울감을 감싸고 있는 수 많은 의미와 기억의 파편들이 다르기도 하지만 우울이라는 개념이 사용되는 각자의 맥락이 다를 수도 있으며 문화가 다르다면 우울이라는 개념에 대한 문화적 외연 역시 상당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뇌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상이한 다양성을 가진 감정의 개념을 보편적 실체로 생각하기 보다는 그 이전에 원형을 이루는 신체적 반응으로서의 느낌이 먼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신체적 반응으로서의 내수용 신경망과 관련된 느낌을 정동(Affect)라고 부릅니다. (감정은 Emotion으로 구분하지요) 물론 이러한 정동은 신체예산관리를 위한 뇌의 예측 활동의 효과로서 있을 뿐이지요.
Reproduced from “Independence and bipolarity in the structure of current affect,” by L. Feldman Barrett and J.A. Russell, 1998,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4), p. 970 (https://doi.org/10.1037/0022-3514.74.4.967). Copyright 1998 by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정동을 이해하기 위해 신체의 느낌에 더 직접적인 요소들로서 쾌-불쾌 (Valence-유인성)와 흥분도(Arousal)라는 기준 개념을 설정해 보았습니다. 즉 인간은 자라면서 구성한 내수용적 예측의 시나리오 속에서 신체의 항상성 관리를 위해 쾌-불쾌와 흥분이라는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정동의 스펙트럼을 형성합니다. 쾌-높은 흥분도에서는 심장박동의 속도와 도파민이라 불리는 호르몬의 분비정도, 땀샘과 감각수용체의 활성도… 등 신체를 세계로 개방하고 더 많은 자극을 수용하려는 몸의 변화를 이끌어내겠지요. 불쾌-낮은 흥분도에서는 이 모든 신체적 기능이 감소하면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몸의 변화를 유도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체의 변화를 통제하는 신체예산관리 체계는 직접적인 세계와의 소통이 아니라 이미 구성한 시나리오 예측에 더 많은 권한을 준다는 점입니다. 수없이 많은 예측 가능성들 속에서 더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요구됩니다. 세계는 여전히 불확정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자극들로 넘쳐나기에 단 하나의 이미지, 단 하나의 소리, 냄새… 만으로도 신체가 자신의 예산 유지에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하지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의미의 생산입니다.
Adapted from “Independence and bipolarity in the structure of current affect,” by L. Feldman Barrett and J.A. Russell, 1998,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4), p. 116 (https://doi.org/10.1037/0022-3514.74.4.967). Copyright 1998 by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얼굴 표정의 다형적 이미지는 그 자체로 아무런 정동과 연관이 없을 수 있지만 표정에 관한 일정한 의미를 공유할 경우 우리는 눈매의 변화 만으로도 상대방에 관한 특정한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틀리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요.)
(4) 감정은 의미로 구성되고 의미는 사회적 산물이다.
즉 예측이라는 뇌의 신체예산관리 체계의 전략은 결국 인간의 언어라는 의미 생산의 체계와 만나게 되면서 훨씬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시나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도구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예측과 그에 따른 정동의 구성 그리고 그 정동을 유형화하고 구체화하는 언어의 의미 생산이 만나 형성된 하나의 집합체가 바로 감정이라는 개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개별적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그 어떤 보편성도 담보할 수없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의 행복-감정으로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사랑은 어떤가요?
“너 나 사랑해?”
“그럼 사랑하지!”
“보여줘.”
“보여주고 있잖아.”
결국 감정은 사회적 실재다.
개인 구성한 감정의 디테일이 다르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정을 보편적으로 공감합니다. 감정 이입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죠. 감정을 하나의 실체로 보는 관점에서는 상대방의 감정이 표정이 말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우리의 인지능력은 그것을 거울뉴런을 통해 공감하고 나의 감정의 내적 실체와 공명하도록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 한 것처럼 그런 감정의 실체 같은 건 없다는 것이 최신 뇌과학과 심리학의 연구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감정의 공감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 미스테리는 바로 언어라는 사회적 실재가 설명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언어를 통해 규범과 행동의 양식을 배웁니다. 배운다기보다는 강제적으로 주입받게 되지요.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잘 떠올려 보세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말을 배우는 과정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과 관점을 주입받고 그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지요.
감정 역시 뇌 내수용적 구조이자 정동에 기반하지만 애초에 그 구조의 형성이 부모로 부터 말을 배우고 부모의 이미지와 행동을 보고 부모가 가이드하는 문화적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과정으로 부터 가능하다고 한다면 결국 내수용 신경망+정동+언어의 조합은 사회가 구성해 주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감정을 무서워 하는가? 근본 감정으로서의 불안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처럼 감정이란 신체의 정동과 언어가 주는 의미의 구성체이지요. 이는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감정 = 신체가 언어에 의해 점령되거나 빠져나가는 것이라는 설명과 유사합니다. 즉 신체예산관리를 위한 내수용성 신경망에서 구성되는 쾌-불쾌/흥분정도의 정동과 기표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의미의 체계가 만나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몸의 표현이지요.
정신분석은 바로 이 인간만이 특이하게 가지고 있는 언어의 체계가 신체와 조우하는 그 지점에 주목합니다. 언어와 신체가 조우하는 그 장소를 우리는 무의식적 주체의 지점이라고 부릅니다. 프로이트가 발견(발명)한 무의식이라는 개념 역시 인간의 의식이 가부장적인(근친상간금지) 특정 규범체계 속에서 인식되는 자아 (언어)를 넘어서는 신체의 영역과의 조우 지점을 가르키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감정, 욕망, 자아…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의식의 세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영역 - 우리는 이것을 진정한 자기의 모습이라고 착각하지요 -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체와 언어가 교집합 되어 있는 부분은 사실 정말 이질적인 맞지 않는 성격의 교집합입니다. 언어로 구성된 문명의 질서와 규범이 우리 몸의 신체예산관리 활동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이 둘을 억지로 결합한 개념의 예로 사회진화론, 우생학과 같은 것들이 있겠지요. 생각만 해도 비극적입니다.
인간의 규범적 언어 문명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생물의 군집을 바라볼 때 갖게 되는 인간의 관점을 생각하면 이 둘의 관계가 어떤 성격일지 쉽게 상상은 됩니다. 바로 “억압” 이지요.
아무데서나 짝짓기를 하고 아무하고나 짝짓기를 하고 사회적 신분이나 성차의 구분과 권력의 질서가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생물에 대해 인간이 가하는 “억압적 시선”…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남근 환상 - 팔루스라는 정신병이라고 정신분석은 바라봅니다. 억압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그 억압의 보상으로 제공하는 일종의 욕망의 환상의 일체를 팔루스적 환상 세계라고 보는 것이지요.
가부장적 권력 체계, 남녀의 성차, 물신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성과주의-피로사회의 문화까지 인간의 문명이 신체와 정동에 부여하는 언어적 억압은 우리가 쉽게 만나는 현대인의 “감정” 불능, 과잉 등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리더의 마음에 나오는 <무심한 CEO> <시스템적 인간> <눈치꾼>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같이 하면서 마무리 하면 좋겠습니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언어-규범을 대표하는 자리로서의 “CEO” “회사원은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거대한 사회적 힘에 사로잡혀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택지가 있다. 그리고 지혜와 예지력으로 그는 우리의 생각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비인간적인 것들을 떨쳐버리고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는 조직과 싸워야 한다.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지 않게. 개인적 자기주장에서 흠이 발견되면 협력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보다 존중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 항복에 대한 강요는 지속적이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직생활을 좋아하게 될 수록 이 요구에 더 저항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직생활을 좋아하게 될 수록 이 요구에 더 저항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아채는 것도 힘들어 진다 .사회와 그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필요하지 않다는 망상을 믿어야 한다는 권력의 조언은 사람을 절망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갈등은 항상 존재했다. 항상 그랬을 것이다. “
Whyte, William H. (1956). The Organization Man. Simon & Schuster,
저는 조직과 사회로 표현한 부분을 인간의 언어와 권력 (상징화)이라고 바꿔 불러보자고 제안하고 싶네요. 갈등은 항상 있다는 표현은 “존재의 갈등이다.”라고 논평하고 싶습니다. 갈등이 없는 순간 즉 평화로운 순간은 그야말로 사회와 언어라는 의미구조 (타자)의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오히려 드문 드문 순간 순간 타자로 부터 저항하고 벗어나는 그 찰나의 순간만 우리는 “주체”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갈등하는 그 순간만이 우리는 주체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