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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l. 꿈, 소급된 상상

열린 문 앞, 망설인다. 들어오지 마시오. 즐기시오 (DO knot-enter= Do enter-tain) 목소리가 들린다.
내일 오전 강의, 준비 해야 하는데, 피곤하다.
화면에 빈 슬라이드, 제목을 썼다 지웠다…
잠이 든다.
잠이 들면 안돼, 문턱을 넘으면 난 강의 준비를 못해. 안돼. 들어가면.
눈을 뜬다.
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꿈은 불만족의 우회적 실현, 프로이트. 억압되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과거와 현재의 그것들이 기이한 이미지들로 뭉쳐지고 최소한 꿈 속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맥락, 행동, 서사가 이어진다. 응충되고 전치되는 우회로를 통해 그것이 드러나고 일부는 해소되는 불만족.
꿈 속 상징은 불만족의 응축, 전치, 형식화를 통해 기억된다. 형식화는 한번에 끝나지 않고 그것이 해석된 것으로 남아있기 위해 수정되고 생략되고 덧대지고 뒤바뀌고….
잠이 쏟아지지만, 잠들어서는 안 되는데, 빈 슬라이드에 제목을 썼다 지웠다하며 해야하는 것, 하기 싫은 것, 보여지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 들어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분열된 욕망과 신체의 피곤함 열린 문과 문턱,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과 Knot-Enter (not enter vs Enter-tain) 목소리.
문턱은 불만족의 상징은 아니다. 프로이트 때문에 깊은 곳에 있을 것이라 상상되는 그 억압된 것은 아니다. 단지 잠 앞에서 망설이는 신체의 피곤함, 심리적 압박, 그 문턱에 다가갈 수록 무거워 지는 발, 역치에 다다른 나는, “잠들면 안돼”. 깨어난다.
기능적 현상. 프로이트의 심연 어딘가에 그것의 흔적이 아니다. 내 신체와 심리를 묶어주는 기능으로서의 상징. 별것 아닌 것. 프로이트를 난처하게 한 것. 응축도 전치도 형식화도 아닌 덧칠… 기억하기 좋은 이미지. 꿈인지 아닌지도 모를 그 모호한 상태에서 내 방문 문턱과도 겹쳐지는 이미지…
강의준비를 대충 마무리하고 다시 잠이 든다.
기차역, 지하철이지만 지상으로 나온 기차역. 약속장소로 가야한다. ‘E’로 시작하거나 ‘ㅇ’로 시작하는 그곳에 내려야 한다. 약속 시간 직전 역에 도착했다.
E로 시작하지만 가고자 했던 그곳은 아니다. 잘 못 내렸다. 반대 방향의 비슷한 이름의 역. Eun…은….
약속에 늦었다. 결국. 어떤 여자를 소개받기로 되어있었나보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에게 사과를 한다. 개의치 않고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담스러운 사람이라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어떤 사건에 연루된 유명한 사람이라고.
평범한 사람인데. 우연히 그 사건에 연루되었고 나는 부담스럽지 않다고. 속으로 나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최근 문자를 읽는 것을 힘들어 했다. 특히 논리적인 글들. 이해되거나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글들. 우연히 찾아온 어지러움증. 화면과 글자를 보면 어지러움은 계속 재발하고 나는 읽기를 거부했다.
무기력함. 욕망을 지속할 만한 그 무엇도 찾아지지 않는 상태. 죄책감이 찾아와야 익숙한 상태. 무기력 속에 마치 시간이 정지한 곳에 홀로 있는 듯 저항없이 무기력이 흐르게 놓아 둔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무용에 대한 욕망은 지속한다. 언제난 새로운 욕망이 솟아날땐 공간과 사람에 대한 환상이 주변을 채운다. 높은 천장과 조용하고 아늑한 나무들, 전면 거울과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평평한 마루, 햇살과 음악… 경이로운 몸의 동작과 몸의 비율을 가진 무용수, 느림과 빠름, 멈춤과 되돌림,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음악을 타고 움직인다.
깡깡 얼은 면발 같던 내 몸들이 점점 데워지며 부드러워지고 그 경이로운 공간과 사람의 그림자처럼 매혹되어 따라가는 그 과정, 끊어지고 찢어지고 어긋나버릴 것 같은 몸의 고통마저 쾌락이 되는 유혹. 나는 몸짓을 욕망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써지지 않는 글. 돼지같은 년. 엄마에게, 남편에게, 시댁식구에게, 그리고 이웃여자의 남자에게서 들었다는 “돼지”라는 말. “난 지금 정육점에서 오는 길이었어요” 말해지며, 돼지라고 말하는 분열된 그녀를 등장시키며 시작하는 그 작품을 나는 쓰지 못한다.
인디언포커를 보았다.
인디언포커의 주인공 이름이 “나평범”이다. 어릴적 피노키오를 보며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그를 돕게다고 TV속으로 들어가려고 젖가락을 콘센트에 넣었다가 전기충격을 받은 아이. 마치 피노키오처럼 사람들에게 이상한 색의 코가 보이고 그 코를 보면 분노를 참지 못하는 아이. 의사가 준 특수한 모자를 쓰면 몇 시간은 코를 보지 않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그 아이가 “나평범”이다.
나와 동갑인 J의 창작극, 외모부터 말투, 삶의 배경과 취향까지 다른 둘은 친하다. 나는 그가 호명되는 자리를 꿈꾼다. 배우이자 연출이자 작가인 그가 (내가) 자신이 쓴 작품을 배우들과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그럴 듯한 플롯과 재미있는 장면들 관객들의 박수와 나름 남는 메시지, 쉽지만 정확히 뭐라고 정리하기 어려운 결론… 처음 그가 내게 초안은 보냈을 때 나는 작품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안도)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수정되고 배우들의 숨이 보태지면서 그럴듯한 연극이 되어있다. 나는 불안하다. 그를 통해 나의 실패를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아직 하지 않은 자리에 남겨졌다. 욕망이 건드려진다. 나도 작품을 만들고 싶다. 무대 위에서 텍스트들이 마구 던져지고 배우들의 오해 과장 상상 속에서 말해진 말이 아닌 낯선 나의 말들과 만나고 싶다.
써지지 않는다. 쓰면 만들어지고 보여질 것이다. 무대에 쓴 것이 오르면, 수많은 거짓과 쏟아지는 죽은 아버지의 뻔한 충고, 협박같은 칭찬들만 난무할 것이다. 나는 욕망을 잃어버릴 것이다. 내가 쓴 것이라 가정된 작품을 보고싶다. 쓰고 싶지 않다. 써지고 싶다. 보여지고 싶지 않다.
“그 망설임이 이강원님의 증상같습니다”
분석가의 말, 흐름을 끊는다.
두 정거장 사이에서 분명 그곳을 향해 리비도를 타고 가지만 도착하는 곳은 잘못된 표지판 앞에 도착하는 것처럼. 순간이동 처럼 만나야 하는 여성에게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듣지 않는다.
여자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나누어 나에게 질문을 돌려주고 나는 우연이라 말한다. 특별함을 말하기 위해 나는 “나평범”처럼 평범하다고 말해진다. “ㅇ”OO…” 은평구 연신내 처음 무의식을 바라보기로, 우울하기로, 이혼과 이별과 연극과 일탈과 아버지…의 문자에서 욕망이 붙잡힌 의미를 떼어낸 그 곳. 매주 은발의 백사ㅇ-현이라는 배우와 내가 쓰여진 꿈대본을 들고 즉흥극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그곳….
“o”으로 시작하는 기차역의 분열된 표지판에 매듭지어져 응축되고 뒤집어지고 여자라는 이미지를 통해 말로서 되물어진 그 억압된 것들이 꿈에서 드러난다는 해석.
매우 존스의 꿈해석스럽다. 응축된 1차 상징의 매듭과 팔루스 앞에서 망설이는 강박적 욕망의 구조를 드러내는 꿈. 피곤함과 하기 싫음과 해야함 속에서 신체-심리의 표상으로서의 “열린 문과 문턱”의 기능적 이미지 …
“이르마( Irma)의 주사 꿈”(1895 년 7 월 23–24 일) ”꿈의 해석, 2장, 151p, 열린책들” 큰 홀, 우리가 접대하고 있는 많은 손님들 가운데 이르마가 있다. 나는 그녀를 곧장 한쪽으로 데리고 가 마치 그녀의 편지에 답하듯, 아직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꾸짖는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아프다면, 그건 정말 네 탓이야.”
그녀가 대답한다.
“지금 목이랑 배, 아랫배가 얼마나 아픈지 당신이 알기나 해요? 몸이 죄다 조여들어요.”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창백하고 부풀어 보인다. ‘결국 내가 어떤 신체적 병을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목구멍을 살펴본다. 그녀는 가짜 의치를 낀 여자처럼 약간 저항을 보인다. ‘어차피 그녀에겐 그런 게 필요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입은 결국 별 무리 없이 벌어지고, 나는 오른쪽에 커다란 흰 반점을 하나 발견한다. 또 다른 곳에는 길게 늘어진 회백색 가피(痂皮)가 기묘하게 말린 형태에 붙어 있는데, 분명 코선반(하비갑개)처럼 형성된 것이다 나는 재빨리 M 박사를 불러 검사를 반복하게 하고, 그는 이를 확인한다…M 박사의 모습은 전혀 평소 같지 않다. 그는 몹시 창백하고, 절뚝이며, 턱수염도 없다… 이제 내 친구 오토도 그녀 옆에 서 있고, 내 친구 레오폴트가 그녀의 작은 몸을 타진하며 말한다.
“왼쪽 아래에 탁음(濁音)이 있어.”
그러면서 왼쪽 어깨 피부의 침윤 부위도 지적한다(드레스 너머로 나도 그 부위를 느낀다).
M 박사가 말한다.
“의심할 것 없이 감염입니다만, 별일 아닙니다. 곧 이질도 생길 테고, 독소는 배설될 겁니다.… 감염의 원인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친구 오토가 최근 그녀가 아플 때 프로필(프로필제) 주사를 놔줬지요—프로필… 프로피온산… 트리메틸아민 (propyl, Trimethylamin 그 화학식이 굵은 글자로 내 눈앞에 선명히 보인다)… 이런 주사는 그렇게 성급히 놓는 게 아닙니다… 아마 주사기도 깨끗하지 않았겠지요.”
이르마의 꿈, 프로이트의 꿈, 꿈의 해석 첫번째로 해석된 꿈.
목구멍, 회백색의 궤양, 주사바늘은 성적 리비도를 기반으로 의사-(아는 집안의)환자의 관계 안에서 오는 치료 실패에 대한 불안과 만나 1차 상징을 이루고, 알 수 없는 목 구멍안 궤양의 이미지 속에서 치료 불능의 상황을 과학적 증거-이미지로 전치 동료의사들의 소환과 감염의 알리바이는 죄책감의 회피 성적 리비도가 구멍의 불안으로, 회백색 궤양의 무력감, 동료의사들로의 죄책감 전가가 하나로 응축된 매듭이 드러나는 꿈. 결국 원인은 감염이고 독소는 배설 될 것이라는 아름다운 서사적 마무리.
리비도-불안-죄책감-과학적 서사(의사들, 감염, 해결)로서의 소망충족의 꿈.
해석은 죄책감을 발견하고,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프로이트의 역전이의 증상을 드러내 주고, 프로이트는 자신의 전이적 근본환상을 쫓고, 가족환상으로 들어가고, 아버지를 떠올리고, 죽이고 싶은 아버지, 죄책감, 전능한 의사의 아버지 이미지와의 동일시, 환자에 대한 환상과 치료 불안…. 역전이, 다시 꿈 속 방어기제….반복되는 전이-역전이의 증상…
반복 강박의 좌절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는 존스와 프로이트.
풀리지 않는다. 가짜 매듭을 풀어도 진짜 매듭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잘라라!
고르디우스의 명령을 어긴 알렉산더는 진정한 마차의 주인이자 프리기아 왕국의 주인이 되었다.
이르마의 목구멍, 기이한 회백색의 궤양, M박사의 개입, 동료들의 말 속에 난입하는 화학이름 기표.
프로이트의 구멍은 이르마의 목구멍으로 대체되고 목구멍은 가피모양의 궤양으로 막히고
기이한 그것은 M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의사들의 진단놀이의 무대로 전환,
갑자기 등장한 “propyls… propionic acid… Trimethylamine” 문자들
감염과 간단한 주의, 그리고 독소 배출의 해결로의 엑스마키나.
알렉산드로스 라칸(Αλέξανδρος Λακάν)은 말한다.
매듭은 푸는 것이 아니라 자르는 것.
프로이트의 매듭은 목구멍에 난입한 기표로 절단된다. 절단된 그 순간 조용히 듣고 있던 라칸이 입을 연다.
“트리메틸라민…. 이상한 문자네요.”
냄새가 아주 역하죠. 어릴 적 학교에서 생선을 해부할 때 맡은 냄새.
과학 선생, 러시아 장교 출신답게 엄하고 엄격한 인물이었습니다.
“독성은 없어!”
과학자는 독성이 없음을 알아야 하는 거죠. 과학자는 생선 해부할 뿐 역하지 않아야 하죠.
트리메틸라민에서 절단된 꿈은 “독성-과학자”의 매듭으로 다시 묶인다.
“망설임이 증상같군요.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곳으로 갔을 까요?”
잘못된 표지판 e-ㅇ 음소가 떠오른다.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알고 싶지만
꿈은 바로 알수없는 질문을 던지는 여자로 장면을 전환하고 잘못된 표지판은 평범과 특별의 차이 밖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이음”이라는 이름의 배우가 말을 거는 “나=평범”의 기표로 이어간다.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Enter-tain”을 듣는 망설임은 강박증의 욕망 구조,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이가 아버지가 되라는 명령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죽은 아버지를 흔들어 깨워보려 죄책감을 소환하지만… 무력감은 더 이상 죄책감을 불러내지도 못한다.
아버지를 부르는 강박의 망설임은, 언제나 잘못 도착하는 역 표지판 앞에서 절단된다.
아버지 없는 곳으로 나왔는데, 아버지를 불러오려고 해도, 나에게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 할 뿐 입니다.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붙잡아야 하겠군요”
너무 쉽게 붙들 수 있는 것이 많아서 망설이게 됩니다.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결국 도착하는 곳은 다른 곳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