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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만세

Cartel 2024. 10. 11.

사랑은 죽지 않는다.

작은 손전등이 달린 열쇠. 허술하게 잠긴 문과 켜지지 않는 조명, 오랜 빈집을 위한 물건. 왜 가지고 싶었을까? 문고리에 매달린 그것을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처럼 감아 넣는다.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고 그것을 찾는다. 결국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샀다.
비밀의 물건으로 열고 들어온 곳. 그곳에서도 무언가를 찾는다.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비밀의 물건으로 들어온 텅빈집엔 찾는 것이 없다. 목이 마르다. 마시고 또 마시고 2리터 생수를 다 마셔도 목이 마르다. 목 구멍으로 들어간 그 물들이 몸 속에 흐른다. 피다. 다용도 칼이 보인다. 몸 안에 흐르는 것. 그것이 흘러나오면… 망설여진다. 아플까. 죽게 될까. 불을 끄고 해보자. 어둠 속에서 따스한 그것. 몸 속에 흐르던 그것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흘러나오고 나른하고 따뜻하고… 간지럽다. 죽음은 나른하고 따뜻하고 간지럽다. 눈물이 난다. 이대로 끝이면… 갑자기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북적대는 카페에서 그도 무엇을 찾는다. 담배를 피지만 그는 입이 아닌 눈으로 찾고 있다. 그녀도 무엇을 기다린다. 담배를 피지만 그녀는 입이 아닌 보는 눈을 기다린다. 둘은 담배를 핀다. 이제야 입술에 문 말랑한 것 속에서 빨려드는 미지근한 온기가 들어온다. 둘은 이제 담배를 빨고 마신다.
그는 보았고 그녀는 보여졌다. 그는 쫓고 그녀는 쫓긴다. 그녀는 유혹하고 그는 유혹당한다. 그녀는 숨고 그는 기다린다. 그녀도 기다린다. 그렇게 둘은 무언가를 찾았고 그는 주고 그녀는 받고 그녀도 주고 그도 받았다.
담배로 빨로 마시며 보고 보여지고 주고 받음은 그와 그녀의 몸으로 계속된다. 껍질을 벗기면 하연 속살이 드러나고 입은 다시 그것으로 향한다. 빨고 핥고 먹고 싶다. 그의 몸 속에 감춰진 그것을 먹을 수 있다면… 있다면.
빨간색… 그것은 유혹의 기호다.
사세요.
건너지 마시오. 빨강 속 기표. 금지하며 유혹하는 그것. 그들이 사는 세상. 금기와 유혹 그리고 죽음이 함께 그곳에 있다.
죽음? 아니 거기까지는 가지 말기를… 돈을 내고 사거나 벌금을 내면 된다. 돈은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죽음을 대신하는 면죄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죽음을 돈으로 밀어낸다.
그들도 그녀도 모두 욕망을 판다. 우리 모두가 욕망을 판매한다. 집, 옷, 함… 매일 삶은 대부분 빈 공간에 채워진 의미들을 설명하고 만지며 살아간다. 실체 없는 의미들은 숫자와 교환의 실체들로 대체되고 돈은 이 모든 가능성을 증거하며 끊임없이 그들을 찾고 또 찾게 만든다.
끊임없는 숨바꼭질 속에서 만족을 주는 것은 담배, 술, 음료. 살갗, 목소리, 숨결, 신음, 소음, 일상을 살아가는 타인의 삶의 이미지… 순간의 그것들. 작은 그것들. 돈으로 살수 있는 그것들. 결핍의 느낌을 잊게 해주는 그것들이다.
샤오강의 욕망은 조금 기이할 뿐. 그는 욕망의 기호를 소비하지 않기에 기이하다. 수박과의 키스는 수박의 기호 밖에 있다. 담배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수박과의 키스는 ‘입’의 대상으로서는 다를게 없다. 촉감 질감 온도 맛 반응… 이건 모든 ‘기호’식품 마다 다르니 다른게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호의 연쇄들 밖에 있기에 기이할 뿐이다. 그는 그것 안에 흐르는 것을 꺼내어 만지고 핥고 바르고 빨고 표면과는 다른 이면의 느낌까지 샅샅히 탐하려 한다. 수박은 더 이상 ‘기호’식품으로서의 의미를 벗어났다. 이젠 그것은 볼링공도 될 수 있으며 살갗이고 흘러나오는 젖이고 끈적한 꿀이며 쾌락의 화수분이다. 하지만 표면도 이면도 흘러나오는 과즙도 모두 찾고 있는 그것은 아니다. 결국 물로 씻어내어야 하는 이물질일 뿐이다.
아롱의 욕망은 기호에 있다. 여자를 보았고 그녀와 밤을 보냈고 다시 그녀를 찾는다. 전화를 하고 다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유혹한다. 혼자선 성인 잡지를 보고 자위를 한다. 그에 위반은 기호의 쾌락을 더해줄 뿐이다. 밀수한 옷을 팔고, 무단횡단을 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는 행위는 위반의 스릴에서 반복된 일상이 되었을 뿐이다. 담배도 여자도 술도 불법노상도 무단횡단도 가택침입도 모두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아롱의 삶은 다채로운 교환 속에서 반복되지만 매말라있는 쾌락의 사막 같다.
샤오강은 아롱과 만난다. 그들의 욕망은 부딪히지 않는다. 서로 침범하는 영역이 없다. 그래서 둘은 공격하지 않는다. 아롱에겐 일종의 흥미로운 이웃이고 샤오강에겐 새로운 미지의 존재로서 둘은 그렇게 각자의 대상으로 만난다.
그녀는 그를 생각한다. 침대 위에서 느꼈던 낯선 자신을 상상한다. 그녀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아닌 자로서 그를 경험했다. 그는 메이의 이름으로서 만날 수 없는 위반의 존재다. 물론 가끔 그녀는 위반을 한다. 그녀는 집도 직업도 고객도 제품도 차도 있는 도시 여자다. 가끔 남자도 만나고 좋은 곳에서 데이트도 즐긴다. 욕조 안에서 거품목욕을 하고 냉장고 속 디저트도 먹으며 세상이 정한 욕망의 사다리 중간 쯤에 있다.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돌보며 행복하게 살아갈 인생이 상상된다. 그런 그녀가 담배를 함께 핀 그녀를 응시하고 쫓아오고 기다리던 그를 쫓고 기다리고 몸을 더듬고 빨며 쾌락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 그를 더듬던 그 침대 위에서 그를 탐닉하던 그녀를 상상한다.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녀를 느낀다.
그녀의 상상 속 그는 그녀 옆에 누워있다. 그의 육체는 그녀의 발 밑을 기어 그녀를 빠져나간다. 그에게 그녀는 유혹의 게임이라는 맥락에서 만나야 하는 유흥의 기호이다. 그녀는 메이가 아닌 상상 속 낯선 그녀로 존재할 때 만 그를 만난다. 메이와 아롱은 그래서 만날 수 없다.
그와 그는 통성명을 한다. 샤오강, 아롱이라는 기호 뒤에서 둘은 함께 있다. 무역을 하고 납골당을 영업하는 사람으로 남의 빈집에서 잠을 자고, 공용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 일상 속 특이함을 공유한 둘은 서로의 안전함을 확인한다. 하지만 샤오강에게 아롱은 뭔가 이름 밖에 무엇이다. 그는 아롱 아닌 그것을 만나고 싶다.
납골당. 죽음의 전시장. 정작 죽음은 없다. 그는 죽음 전시된 곳에 죽음이 없음을 안다. 죽음을 박제하고 산자들의 욕망을 공간의 넓이로 환원하는 그곳은 행복한 사후 세계의 환상으로 넘쳐난다. 부부와 가족을 위한 장소는 죽음을 영원히 삶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 그에게 죽음은 거기에 없다. 그에게 죽음은 간지러움, 나른함, 따뜻함의 쾌락이기에 그는 죽음을 욕망한다.
그녀는 담배를 문다. 담배는 메이를 낯선 기억으로 데려간다. 그와의 담배, 몸, 따뜻함… 낯선 그 쾌락의 기억을 위해 욕조의 물은 식어서는 안된다. 물이 차갑다. 가스 냄새가 진동하고 그녀는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불안은 모기처럼 날카롭다. 쫓아버리고 잡고 싶지만 그 날카로움은 다시 메이를 각성한다.
너는 메이다.
아롱은 샤오강과의 만찬 후 남의 집을 나간다. 샤오강은 혼자 남았다. 그가 누구를 욕망하는지 안다. 샤오강은 그녀가 되고 싶다. 그녀처럼 옷을 입고 그녀가 되고 싶다. 아롱이 욕망하는 그것으로 변신하고 싶다.
그는 다시 물을 마신다. 목마르다. 그것을 채울 수 없다. 아롱에게 가야 한다. 그는 무언가를 줄 것이다. 그를 갖고 싶다.
그녀는 잠이 오지 않는다. 알람은 그녀를 밖으로 밀어 낸다. 담배를 피며 운전한다. 아롱이 있는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가고 있다.
그녀도 그도 아롱이 있는 노점상에 왔다.
그녀는 다시 아롱 앞을 서성인다. 낯선 여자로서 다시 그를 유혹한다. 기다린다. 쫓고 쫓는다. 먹을 것을 사고 주고 받고 앞서고 따른다. 다시 둘은 그와 그녀로 함께 그곳으로 간다. 그는 혼자 남는다.
그는 아롱의 침대로 간다. 그의 냄새를 맡고 자위를 한다. 아롱과 그녀가 그곳으로 온다. 그는 침대 밑으로 숨는다. 아롱과 그녀는 다시 섹스를 한다. 그는 아롱의 소리를 듣는다. 침대 위의 진동과 냄새가 느껴진다. 아롱의 소리, 아롱의 냄새… 그를 상상하고 만지고 다시 자위를 한다. 자위를 하면서도 그는 손수건을 꺼낸다. 그의 쾌락은 그렇게 통제되고 정교하다. 아롱의 소리, 냄새, 진동… 그는 메이를 질투하지 않는다.
그녀는 메이가 아니다. 그녀는 그녀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 낯선 쾌락을 탐닉하는 낯선 여자. 그녀가 탐닉하는 아롱의 몸은 메이가 아닌 그녀의 쾌락이다.
그녀는 다시 메이로 돌아온다. 일상에서 무단횡단 수준의 위반을 하며 살아가는 메이로 다시 돌아온다. 너는 메이다. 죄책감이 몰려온다. 경멸스러운 자신이 가엽다. 갖지 못하는 것, 그 결핍이 자신을 낯선 곳으로 몰아간 걸까. 더 많은 돈, 남편, 아이들… 왜 나는 그런 것을 갖지 못할까. 이곳의 외로움. 그녀는 그녀가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한다. 그녀 스스로를 자책하고 연민하며 통곡한다. 다시 담배를 문다. 작은 위로. 부드러운 그것을 입으로 빨면 들어오는 그 따스한 것에 다시 결핍을 욕망하는 메이로 돌아온다. 그녀의 슬픔은 지속될 것이다. 그녀의 쾌락이 메이와 낯선 그녀 사이를 반복하는 한 메이는 또 다시 울 것이다.
그는 아롱에게 키스한다. 쾌락의 마지막 인사처럼 그는 자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깔끔한 쾌락의 연극을 마친다. 그는 또 다시 그 쾌락을 찾을 것이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아롱은 꿈꾸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여자를 유혹하고 또 다른 잠자리를 하는 꿈을 계속 또 다른 것을 욕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