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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L

메모리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4.
9. 13. 이강원
잠이 오지 않는다. 풀 냄새 흙 냄새 오래된 벽지와 천정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 같은 것들이 뒤 섞였을 그 이상하고 낯선 냄새가 난다. 목에 뭐가 걸린 듯하다. 몸이 근질거린다. 코가 막힌다. 거슬리는 그 가려움이 목과 코 사이에서 꿈틀댄다. 기침을 하고 싶다. 이 상한 소리가 들린다. 제시카는 그 소리를 듣는다. 몸이 공명하듯 울린다. 그것이 내 머리를 때린다. 나는 생각한다. 소리를 듣는 다는 말은 부족해. 그건 뭔가가 나에게 닿는 것이다. 때리고 울리고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이상한 상상과 감정을 매만진다. 그것들이 깨어나면 나는 상상을 한다. 제시카는 몸의 털이 서고 한기를 느낀다. 제시카는 생각한다. 소리는 분명 기원을 갖는다. 소리는 어디선가 생겨나 나에게 도달 한 것이다. 거기가 어딜까? 나는 커다란 공이 땅에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금속으로 만든 우물에…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우물에 커다른 금속 공이 떨어지면… 나는 그 소리의 기원이 알고 싶다. 나는 생각한다. 듣는 것은 알아야 끝이 난다. 모르는 것은 단지 감각한 것일 뿐 그것은 듣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기억한다. 캄캄한 밤 숲 한가운데서 들리던 그 날카로운 소리를 기억한다. 분명 아기 울음 소리 같던 그것은 동물의 울음소리라고 생각했다. 제시카는 동물을 상상하며 안도한다. 제시카는 소리를 찾아 나선다. 이미 들리는 그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에르난을 만났다. 에르난이 말한다. 그 소리는 음악소리 같은 건가요? 어디서 들은 건가요? 나는 생각한다. 분명 그 소리는 시공간에 있다. 제시카가 들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유사한 것을 설명하면 그 소리를 재현할 수 있다. 난 샘플링된 소리에 진폭과 저음의 크기를 조작해 새로운 소리를 만든다. 제시카가 말한다. 이게 비슷한 것 같아요. 네 이 소리에요. 아니 이 보단 좀 둔탁해요. 에르난이 말한다. 이게 피치가 높을 때 나는 소리에요. 나는 그녀가 원하는 소리를 그려낸다. 나는 말한다. 60에서 100헤르츠에요. 저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려요. 영화관에서 듣는 소리는 다르죠. 에르난은 더 저음이 강한 소리를 들려준다. 나는 소리를 보고 듣는다. 제시카는 생각한다. 정확한 소리다. 재현된 것은 명료한 소리다. 다시 만들 수 있는 소리다. 나는 생각한다. 이 소리는 가짜다. 진짜는 있다.
나는 말한다. 내 소리와 섞어 봤어요. 제시카에게 헤드폰을 씌워준다. 제시카가 말한다. 이 소리가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군요. 멋져요. 난 에르난이 그 가짜 소리를 자기 음악에 집어 넣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장난같다. 에르난이 말한다. 당신이 난을 보관한 냉장고를 사는데 돈을 보태고 싶어요. 큰 냉장고가 늘 갖고 싶었어요. 모아둔 돈이 있어요. 제시카가 말한다. 빌려주겠다는 건가요? 에르난이 말한다. 꼭 그런건 아닌데… 안되나요? 나는 그가 다시 장난같다. 소리를 기원없이 만들어낸 그가 아무 이유없이 돈을 주겠다는 것이 장난같다.
후안과 동생 부부와의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생각한다. 동생의 병의 원인이 죽은 개 때문일까 아니면 아마존 투명인간족의 주술일까. 원인이 있어야 병일까? 그 소리의 원인이 있어야 할까? 제시카는 소리를 느낀다. 몸이 울린다. 동생과 후안은 감각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만이 감각하는 소리, 원인도 모를 그것은 과연 있는 것일까?
제시카는 에르난을 다시 찾는다. 에르난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없다. 나는 다시 그를 설명한다. 30대에 키는 이정도… 그런 사람은 없다. 제시카는 생각한다. 아니 에르난은 있다. 저들은 모를 뿐 나는 그를 만났다. 저들은 단지 만나지 않았을 뿐…. 음악이 들린다. 나는 분명 그것을 들었다. 에르난의 작업실에서 들었던 것 같은 그런 음악이 들려온다. 제시카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을 따라 망문이 열린 곳에 다가간다.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와 드럼 연주자들이 악기를 퉁기고 때리고 있고 거기로 부터 흘러나오는 익숙한 소리를 듣는다. 아름답다. 아는 소리. 익숙하고 새로운 멜로디. 나는 생각한다. 소리는 이런 건가. 저곳에서 흘러 나오는 즉흥연주 같은 익숙한 새로움.
그것은 어디에서 흘러 나온 것일까? 연주와 같이 사람이 하는 인위적인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공사현장에서 나는 굴삭기 소리. 두꺼운 쇠의 끝이 강렬하게 진동하며 땅과 교접하는 순간 흘러나오는 그 울리는 소리는 파괴일까 예술일까? 그곳에서 발견된 정체 불명의 사람 뼈들은 교접의 사생아일까?
나는 병에 걸린 것일까?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은 병이다. 의사가 말한다. 환청은 이 지역에서 흔해요. 신경 안정제를 원하나요. 중독될 가능성이 커요. 약이 공감력을 떨어뜨려 아름다움을 잃게 하죠. 슬픔에도 둔감해져요. 주님은 늘 곁에 계신답니다. 읽어보세요. 살바도르 달리 아세요? 그는 아름다움을 알았어요. 나는 말한다. 달리도 약을 먹지 않았을까요? 의사가 말한다. 그럴리가요. 분명 그러지 않았을 거에요.
제시카는 소리가 나는 곧을 향한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으로 내려간다. 에르난이 말한다. 당신이 어디에서 지내는지 알아요. 나는 말한다. 보고타에서 온 인류학자 인가요? 나는 말한다. 그냥 관광객이에요. 메데인에서 왔어요. 에르난이 말한다. 기억나요. 우주에 있었어요. 여기를 탐색중이었죠. 두 연인을 발견하고 내가 태어났어요.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본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나의 기억이며 나의 이야기라고. 두 아이에게 목걸이와 점심을 빼앗기고 두둘겨 맞았던 기억이 나라고… 나는 말한다. 인간의 발명품 중 이만한 것이 없죠. 의사가 처방한 약이에요. 에르난이 말한다. 당신 약이네요. 나는 필요 없어요. 제시카가 말한다. 어떤 소리가 들려요. 그 소리가 계속 듣고 싶어요. 이상하죠. 아기였을 때가 기억나요. 엄마의 블라우스와 코가 타는 듯이 아팠던게 기억나요. 뭔가 커다란 것이 다가 왔어요. 내가 울었죠. 나는 생각한다. 꿈일까? 나의 기억일까? 에르난은 생선을 손질하던 물건들을 행구고 정리한다. 제시카가 말한다. 혹시 꿈을 모두 기억하나요. 나는 말한다. 나는 꿈을 꾸지 않아요. 제시카가 말한다. 보여줘요. 나는 풀밭 위에 누어 잠이 든다. 제시카는 생각한다. 죽은 것 같다. 눈을 뜬채 누워있는 모습이 이상하다. 나는 손가락을 그의 코에 가져간다. 숨을 쉰다. 나는 그 옆에 앉아 그를 바라본다. 나는 생각한다. 꿈이 없는 잠은 죽음일까? 말없는 삶은 죽음일까? 원인없는 소리는 소리일까?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제시카가 바라보는 것들을 바라본다. 그녀가 듣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 제시카가 느끼는 햇빛과 바람을 느낀다. 나는 스크린 속 두 배우를 바라본다. 배우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본다. 움직이는 나뭇잎, 빛을 반사하며 흐르는 계곡 물과 날아오르는 새들… 나는 보고 있는 것일가?
나는 잠에서 깬다. 제시카가 옆에 있다. 제시카가 말한다. 어땠어요. 죽음. 에르난이 말한다. 괜찮았어요. 잠깐 멈춘 것 뿐이니까.
나는 손질한 생선을 물로 닦는다. 제시카가 내 방을 둘러본다. 창문 밖을 바라보고 창을 만진다. 제시카가 돌을 집어든다. 에르난이 말한다. 내가 제일 아끼는 이야기돌이에요. 내가 말한다. 미안해요. 에르난이 술을 권한다. 나는 술을 받아 마신다. 더 달라고 한다. 에르난이 말한다. 꿈꾸는 기분을 짐작할 수 있는 수단이죠. 내가 말한다. 훌륭한 발명품이네요. 직접 만들었다니… 제시카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묻는다. 저거 만져봐도 되요? 내가 말한다. 그럼요. 나는 날카로운 믹서기 날이 박힌 나무 상자의 스위치를 눌러본다. 에르난이 말한다. 조심해요. 얼룩보이죠. 그게 내 피에요. 제시카는 스위치들을 모두 눌러본다. 이유 모 것들의 움직임이 재미있다. 옆에 작은 아이의 사진이 있다. 기억이 난다. 나는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 여럿이 함께.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다. 밤새 찾는다. 난 여기에 있었다. 파란색 침대보도 그대로다. 엄마는 내 손가락을 펴 입으로 가져간다. 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비벼댓다. 코가 타는 듯이 아팠다. 피부가 벗겨지는 것 같다. 천장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람들이 들어온다. 에르난이 말한다. 당신은 내 기억을 읽고 있어요. 난 하드장치이고 아무래도 당신은 탐침같군요. 나는 기억한다. 어두웠다. 새벽 4시에 소변이 마려웠지만 갈 수 없었다. 참고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제시카가 말한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거죠. 내가 말한다. 네. 그건 내 과거에요. 나는 에르난의 말에 눈물이 났다.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 생생하고 아팠다. 내가 말한다. 왜 울어요. 당신 기억이 아니잖아요. 제시카가 말한다. 계속 들려요. 그것도 당신 기억인가요? 나는 제시카를 바라본다. 나는 에르난의 손을 내 팔에 가져와 댄다. 나는 말한다. 그건 우리의 시간보다 앞선 기억이에요. 나는 손에 전해지는 것을 느낀다. 창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나의 기억이다. 그것은 나의 기억이 아니다. 단지 기억일 뿐이다. 그것은 내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내 밖에서 온 것이다. 에르난의 것이자 제시카의 것이다. 나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가 나에게 온다. 두 아이가 나를 때린다. 나는 말한다. 그만해! 누구의 기억인지 모를 그 소리가 들린다. 제시카는 그 소리를 다시 듣는다. 그것은 에르난의 기억이다.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나는 기억에 열려 있다. 기억은 나에게 열려있다. 제시카는 가만히 바라본다. 보는 것 없이 기억 속을 바라본다. 에르난의 손을 때고 제시카는 창문에 다가가 소리를 본다. 외계에서 온 나는 지구를 탐사하는 중이다. 비행체는 그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에르난이 기억하는 것을 내가 듣는다. 제시카는 상상한다. 나는 그것이 날아가는 소리를 본다. 둥근 원이 빛을 내며 돌다가 사라진다.
두 사람이 바라본다. 두 사람을 바라본다. 에르난이 바라본다.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익숙한 새 소식이 들린다. 에르난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을 뒤흔들어 놓는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것들을 털어버린다. 나는 바라본다. 새로운 것이 아닌 기억된 것을. 원인이 아닌 잃어버린 것을.
언어가 없다면 꿈을 꿀 수 있을까? 언어가 없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은 가능할까? 증상의 경험은 해석을 통해 그 기원을 향해 간다. 증상의 기원에 대한 기억은 누구의 기억일까? 그 지식은 그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증상은 내 밖에 있는 기억일까? 영화를 본다는 건 무엇을 보는 것일까? 제시카와 에르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그들이 보는 것을 보는 것. 나의 기억을 보는 것. 그 기억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것. 누구의 기억을 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