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9. 2022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의지하고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만약 우리가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의지하고원하고 욕망하기 때문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
W3. Lecture Slide
감정이 문제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 일을 그르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참아야 했는데, 너무 화가나서 또는 너무 기뻐서 생각없이 행동했고 그래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너무 손해보는 합의를 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그럴때마다 스스로 감정의 통제 능력이 부족함을 탓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과 더불어 더 이성적인 판단을 위한 치밀하고 치열한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렇게 감정에 대한 통제욕망은 새로운 종류의 의지로서 감정을 키워갑니다.
이성이 통제하는 감정은 일종의 상상입니다. 그러나 이 상상은 사회적인 규범을 창조하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그러해야 하는 상상의 규범이 원래 그런 것 또는 자연스러운 것과 혼동됩니다. 합리적인 인간은 욕구를 이겨내고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돈을 아끼고 모아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기도 합니다. 시장에서는 수요의 가격과 공급의 가격이 만나는 지점에서 합리적인 매매가 일어나고, 재고가 쌓이거나 사람들이 상점 앞에 줄을 서서 물건을 기다리는 일은 없습니다. 부동산도 금융자산도 적정한 가치에 이르면 재빠른 조정을 통해 정상 가격을 찾아가고 모두가 필요한 만큼 돈을 벌고 각자의 효용에 따라 살아가기에 주관적인 행복도 최고의 상태에 이릅니다.
그러나 현실이 위와 같지 못한 이유는 인간이 가진 감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합리적인 행동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의 규범은 그래서 비합리적인 행동의 원흉인 감정을 통제하거나 배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감정이라는 놈도 그리 쉽게 물러서지는 않습니다. 영장류로 진화하기 이전 부터 인간의 뇌에는 생존본능을 위한 신경구조가 자리하고 있었고 언어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고등한 뇌의 구조 아래 또아리를 틀고 앉아 결정적인 순간마다 인간의 완벽한 합리성에 발목을 잡습니다.
의사결정과 협상의 상황 속에서 최적의 합리적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무시하거나 찍어 누르기 보다는 잘 달래고 설득해서 합리적 이성이 추구하는 전략에 협조하도록 해야한다고 충고합니다. 육체가 요구하는 쾌락이나 단기적인 욕구를 일정 부분 인정하고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의 일탈을 허용하라는 제안부터 감정을 배제하기 위한 일종의 원칙 기반의 메뉴얼과 기계적 적용을 통해 감정이 개입할 틈을 주지 말라는 제안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의사결정과 협상 속에서 감정을 배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니 질문을 바꿔서 감정이 배제하거나 통제해야 하는 무엇이기나 할까요?
뇌신경 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정서적 기능이 망가진 뇌를 가진 인간은 의사결정에 상당한 어려움을 갖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흔히 정서가 메마른 사람이 냉정한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서적 기능의 문제는 인간의 지성적 판단의 기본적인 선호구조를 상황에 따라 분별해 내지 못하고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를 잘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행하는 이성적인 판단의 근간에 정서적으로 구조화된 시나리오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이자 뇌신경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이기도 한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인간의 뇌가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과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분리된다는 믿음이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특정 감정에 대응하는 뇌의 물리적 영역이 있다는 주장이나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실재하는 감정의 원형이 있고 이를 분류하거나 물리적인 현상의 관찰을 통해 측정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실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녀는 인간의 뇌가 외부세계의 자극과 실재를 반영하고 반응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인간의 뇌는 인간의 의식 안에서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를 구성하듯 내적인 감각표상과 세계를 형성하고 가장 효율적인 시나리오 대로 몸이 반응하도록 기능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주 가끔 그러한 시나리오가 외부 세계의 자극이나 적응에 문제를 발생시킬 때 뇌는 외부 자극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존의 시나리오를 변경하는 이례적이고 피곤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감정의 지각 역시 인간은 자기 몸의 신체 상태를 조절하기 위한 내부의 시나리오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주 기본적인 몸상태로서의 느낌 - 쾌와 불쾌, 흥분과 안정 등-의 표상으로서의 정서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기본 정서 위에 인간의 세계 경험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 개념이 더해지면 슬픔, 사랑, 증오, 분노, 연민, 공포 등의 감정의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감정은 개인마다 또는 문화적 집단 마다의 형성과 변화를 거치는 구성된 실재이지 완성된 형태의 감정의 원형이 우리 내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감정에 관한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배제하려고 했던 이성적 인간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단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립적이고 냉정한 마음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나의 존재와 함께 하고 있는 어떤 감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제안할 때 나에게 준비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그 감정을 만들어 낸 내(또는 나의 집단)가 예정하고 있는 상황은 무엇인지, 왜 그러한 예측과 시나리오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되었는지... 등 나의 감정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관계가 나에게 스스로 또는 명령하듯 만들어준 수많은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감정의 기저에 있는 기본 정서는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현상태와 직접 연관되어 있으며 감정의 언어 이전에 몸의 상태 자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나의 신체 에너지가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그것은 감정의 구성과 선택에 영향을 주고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 말입니다. 간과하기 쉬운 수면의 양과 질, 외부 자극의 과잉, 혈당과 심박수... 등의 몸상태의 관리 만으로도 우리는 감정과 의사결정의 부정적 상태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나르시즘의 유혹에서 지각의 편향과 주의력의 한계를 고민하며 다양한 의사결정의 문제상황들을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뇌가 가진 인지구조와 감정 구성의 구조에 대한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인 거울 자리에서 우리는 “나"가 원하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