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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 철학 S. 1

자기 소개 Me_presenting

120분 동안 열 한 분의 개별자가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일관성의 압박
어린 시절의 경험과 변화의 계기들, 성격 유형과 심리적 개념들, 선호하는 사물과 이미지들, 상황과 감정, 사회 속에서 자리잡힌 역할과 자신의 감정들… 셀 수없는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사람의 정체성을 세우고 흔드는 긴장이 공간을 채웁니다.
말의 연쇄들 속에서 발화자 수용자 모두 이해한 것과 아직 이해되지 못한 것 사이에서 이해 가능성을 찾아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것은 침묵으로, 웃음으로, 고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아-음~의 소리로 공유된 상상을 이어갑니다.
여정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 끝에 놓여 있는 공통의 것
한 시간이 지나고 다섯번의 소개가 지나가는 순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흥미로워 하던 시간은 점점 다름을 넘어 묘한 반복의 지루함으로 찾아옵니다.
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이든 그것은 결국 인정, 행복, 책임, 올바름, 죄책감, 성장 같은 아이템을 모아가며 어디론가 쉼없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각자의 여정이 있지만 내년에 볼 드라마 처럼 모르지만 이미 알고 있는 그 여정의 이야기에 호기심은 더 이상 유혹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반복 속에서 희미한 유혹과 불안이 느껴집니다.
저 반복을 멈추는 다른 말은 없을까?
모두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유사한 지루함을 느끼는 걸까?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저 여정들을 이끄는 그 “하나”는 무엇일까?
그 “하나”가 없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를 그 하나를 향해 재현하는 무수한 말들, 그 말들의 연쇄를 멈추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나의 소개 - 내가 아님의 고백
나는, 기다리며 돌아 걷는 자다. 모래 위에 디딤돌을 놓으며 한발 한발 어떤 욕망의 불을 향해 걷다가 그 뜨거움에 다시 돌아 걷다가 멀어지면 다시 그 불을 향해 돌아 걷는다. 불은 곧 꺼질 것을 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타오를 것이다. 단지 기다리는 것은 진리의 불, 그 불을 향해 돌아 걷지 않고 나아갈 그 날.
나는 마치 세상을 고칠 수 있는 “아는 자”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과학(생물학)을 알면 눈 앞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은 세상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의사)이며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픈 건 단지 병 때문 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부당함에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이제 사람의 병이 아니라 사회의 병을 고치는 아는 자가 되기를 희망하며 정치와 법을 알고자 했고 알게 되었다.
30대에 정치를 아는 것과 정치의 실세계가 다름을 경험하게 되었다. 오히려 실세계를 중심으로 내가 “아는 정치”는 정치 현실에 주는 희망 고문이자 동시에 정치 현실의 개선 가능성을 통해 현실을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한편 그 과정에서 나를 유혹한 것은 권력과 갈등에 관한 전문성 (여전히 “아는 자”로서의 인정)이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경영(admin)의 체계-구조를 ‘아는 자’ 로서 관찰하고 전략과 협상을 실천하는 자로서 전문가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에서의 앎 (정의, 자유, 평등, 평화…)의 실천이라는 믿음도 만들어나갔다.
전문가의 가면 속엔 아는 자라는 권력의 욕망이 있었다. 그것이 욕망인 이유는, 그것이 욕망 아닌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매번 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조직 안에서 인간다움 (정의, 평등, 자유, 평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도 사실도 실제로 내가 했던 의사결정과 실행도 아니었음은 당연했다. 혁신, 지속가능성, 문화…어떤 변명의 개념을 가져와도 그 본질엔 비용절감과 소비의 극대화, 시장의 독점과 기득권의 강화 외엔 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나는 누구에게나 이해받을 수 있는, 추구해야 할 것을 향해, 인정받고 안정된 상태인 동시에 망각하며 마비된 상태인 동시에 만족한 것 같은 순간의 행복감 속에서 그 환상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환상은 언제나 그렇듯 성취와 동시에 몰락을 가져다 준다. 얻은 것은 죽은 것이되어 썩은 냄새로 추구했던 의미의 향기를 덮어 버린다.
그리고 그 냄새와 함께 불안이 찾아온다. 의미는 지워지고 다시 현실의 비루함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불안 앞에 멈추어 섰다. 불안은 언제나 가지않은 길을 상상하게 하고 미지의 그곳에 또 다른 쾌락이 있을 것이라고 나를 유혹한다. 내가 가지 않은 길…. 은 없다.
유일하게 해보지 않은 것은 “길을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상상 - 욕망 - 의미 - 추구 - 성공 또는 실패 - 의미의 퇴색 - 허무 - 불안 - 또 상상…의 반복의 길을 가는 것은 무한히 인생을 통해 돌아 걸었다. 결국 멈추었고 그 불안과 우울함 속에서 하이데거를 만났다.

das-Man 그들 속에 있는 나

“나”라는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 (하이데거 이전)

생각하는 나
데카르트의 의심 (모든 것을 의심하는 행위, 의심이라는 것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가?)
즉 존재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은 ~이다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정의될 수 없으며 ~이다 자체를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의심하는 그 자체로 있다.
물자체에 대한 보편 범주적 인식 - 시공간
사유하는 내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보편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인식 이전에 선험적 차원에서의 보편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나, 즉 의심 그 자체를 왜 의심하지 않는가?

일정의 우상에 빠져 존재 그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 상황 - 존재 망각
~란 무엇인가? 질문 자체의 한계
우리는 이미 이해하과 파악된 것에 대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문제는 그것이 이해 되기 이전 그것이 왜 그것으로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 아니라 / 그것은 왜 인간이라고 명명되고 어떻게 물어지는가?
진리란 무엇인가? 가 아니라 / 진리는 어떤 조건에서 진리가 되는가?
대상/현상과 그것을 말하는 언어의 일치 = 참 (진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대상/현상은 왜 그렇게 말해질 때 참이 되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평균적인 일상성 : 매일 살아가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

~란 무엇인가? 가 아니라면….존재 물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론 - 현상학적 해석학)
“분명히 그 양식은 존재자를 그것이 우선 대개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즉 그것의 평균적인 일상성에서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성에서의 임의의 우연적인 구조들이 아니라, 현사실적인 현존재의 모든 존재양식 속에서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 구조로 관철되고 있는 그런 본질적인 구조들이 산출되어야 한다. 그럴 경우 현존재의 일상성의 근본 구성틀에 대한 관점 안에서 이 존재자의 존재를 예비적으로 부각시키는 일이 자라나게 된다.”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즉 인간 아닌 것과의 차이 또는 인간 만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탐구) 가 아니다. 이미 이것은 인간에 대한 선이해를 바탕으로 대상화하는 특정한 구조 속에서 제시되는 질문일 뿐이다.
일상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고(현상학), 그것 밑에 있는 있음의 구조를 나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야 한다. (해석학)
즉 보편적 인간의 이해 이전에 그 보편을 구성하는 심층의 존재로서의 무엇이 있는 것이다. (구조주의?)
하이데거를 통해서 우리가 눈 뜨게 되는 (발견하게 되는) 건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무엇이 있으며 그것은 무엇일 수도 있고 무엇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자가 아니라 일종의 과정이나 현상으로서 단지 존재하다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말해질 수 없는) { } 이다라는 점이다.
그 말해 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해 보는 것… 이것이 존재 물음이다.

우리는 그들, das-Man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사람들이 타인들과 함께 타인들을 위해서 또는 거슬러 장악한 그것을 배려함에는 항시 타인과는 다르다는 차이에 대한 염려가 깔려 있다. 이때 그 염려는 타인과의 차이를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타인들에 뒤처져 있기에 자신의 고유한 현존재를 그들과의 관계에서 만회하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현존재가 타인들에 대한 우월함 속에서 타인들을 억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일 수 있다. 서로 함께 있음은 (그것 자체에는 은닉되어 있지만) 이러한 거리에 대한 염려로 인해서 동요하고 있다. - 27절 -
격차성
익명성
평균성
무책임성
그들로서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있는가?(존재하는가?)
잡담 - 빈말 = 이야기 되는 것을 그저 따라함, 미끄러지는 말들의 연쇄이자 끊임없이 의미를 생산하는 환상의 연쇄 (환유)
호기심 - 그것은 끊임없이 둘러봄이며 보지 않기 위해 계속 스크롤하는 봄이다.
라깡의 응시 개념
애매성 - 은폐함, 가려진 것을 욕망하는 그들 속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