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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 } 철학 Pre-session

Pre-Session

경영이 드러내는 - 동시는 숨기는 - 세계 속에서 나는 누구로 /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철학은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에 저항하고 무지의 공백 { }을 지키는 삶의 실천이다.
경영{ }철학은 경영 세계-내-존재하는 나를 무지의 공백으로 끌어내리는 타락의 경험으로 초대한다.
1.
나에 대한 무지
나라는 존재자, 내가 인식하는 세계 그리고 의미
나에 앞서 있는 존재
일상에 빠져있는 나, 빈말, 호기심, 애매성 그리고 불안으로의 초대
2.
타인에 대한 무지
나와 타자, 나의 타자, 타자의 나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진리이다.
3.
나의 무지
읽어 볼 책
타자철학 2장 하이데거 편 읽기 + 어떤 이유에서 든 문장/문단 표시해서 오기

Me-Presenting vs Re-presenting

나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의식이 만드는 자아란 진짜일까?
성격유형의 심리학
사회적 역할과 위상 속 나의 자리
반복과 일관성으로서 나
나는 대개 내가 세계(타자)를 어떻게 관계하는가라는 관점과 세계가 나를 어디에 두는가 라는 관점에서 나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성격심리학이 나를 중심으로 세계와 관계하는 양상을 유형화하려고 한다면 네트워크-커리어앵커 등의 사회적 역할 관점의 접근은 세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호명되어 살아가는가라는 방식으로 나를 설명한다.
결국 나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정체모를 자아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하거나 누군가가 만든 세계의 구조와 명령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혼란스러운 노력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일관성과 동일성을 찾지만 매번 찾아오는 건 분열과 불안입니다. 삶은 이 혼란을 잊고 끊임없이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며 의미의 연쇄 - 롤러코스터 놀이를 제안합니다. 경영의 세계가 제안하는 삶의 흥분 속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살아(달려)갑니다.
학교, 병원, 감옥, 군대, 공장…으로 이루어진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그 자리는 이제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대체되었다.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이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다. ~해서는 안된다. ~해야한다의 사회는 부정성의 세계다. ~할 수 있음 (Yes, we can), 이 복수형의 긍정형의 문장은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금지의 세계는 광인을 생산한다. 성과사회는 우울증자와 낙오자를 생산한다. 규율에서 성과로의 전환은 사실 하나의 명령 아래 수행되는 새로운 전술적 변화다. “더 생산하라”라는 명령은 일사분란한 규율의 효율성을 통한 오퍼레이션 관리를 넘어 이제 소비 자체의 창출을 위한 혁신과 조직 내부의 운영을 해체하는 열린 경영(외주화)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개별 경영자로서 경영하는 세계 속 주체가 되었다. 노동을 넘어 욕망을 강제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욕망 자체를 상실하고 무욕의 멜랑꼴리아(우울증) 상태에 놓인다. 그나마 욕망이 남은 이에겐 낙오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끝나지 않는 패자부활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성과 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 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 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탁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 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한병철, 피로사회, p23 ~ 29, 문학과지성사, 요약 발췌 및 해설

철학은 경영의 질주 앞에서 ∅ = 멈춤을 유혹합니다. { } = 무 = 공백 = 존재를 두고 방황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새로운 { }을 발명-기투할 것을 요구합니다.

Dec. 16. 2023

자기 소개 Me_presenting

120분 동안 열 한분의 개별자가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변화의 계기들, 성격 유형과 심리적 개념들, 선호하는 사물과 이미지들, 상황과 감정, 사회 속에서 자리잡힌 역할과 자신의 감정들… 셀 수없는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사람의 정체성을 세우고 흔드는 긴장이 공간을 채웁니다. 말의 연쇄들 속에서 발화자 수용자 모두 이해한 것과 아직 이해되지 못한 것 사이에서 이해 가능성을 찾아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것은 침묵으로, 웃음으로, 고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아-음~의 소리로 공유된 상상을 이어갑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다섯번의 반복이 지나가는 순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흥미로워 하던 시간은 점점 다름을 넘어 묘한 반복의 지루함으로 찾아옵니다. 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이든 그것은 결국 인정, 행복, 책임, 올바름, 죄책감, 성장 같은 아이템을 모아가며 어디론가 쉼없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각자의 여정이 있지만 내년에 볼 드라마같이 모르지만 이미 알고 있는 그 여정의 이야기에 호기심은 더 이상 유혹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반복 속에서 희미한 유혹이 느껴집니다. 저 반복을 멈추는 다른 말은 없을까? 모두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유사한 지루함을 느끼는 걸까?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저 여정들을 이끄는 그 “하나”는 무엇일까? 그 “하나”가 없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