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Paul K.Lee

나의 소개 - 내가 아님의 고백
나는, 기다리며 돌아 걷는 자다. 모래 위에 디딤돌을 놓으며 한발 한발 어떤 욕망의 불을 향해 걷다가 그 뜨거움에 다시 돌아 걷다가 멀어지면 다시 그 불을 향해 돌아 걷는다. 불은 곧 꺼질 것을 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타오를 것이다. 단지 기다리는 것은 진리의 불, 그 불을 향해 돌아 걷지 않고 나아갈 그 날. 나는 마치 세상을 고칠 수 있는 “아는 자”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과학(생물학)을 알면 눈 앞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은 세상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의사)이며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픈 건 단지 병 때문 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부당함에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이제 사람의 병이 아니라 사회의 병을 고치는 “아는 자”가 되기를 희망하며 정치와 법을 알고자 했고 알게 되었다.
30대에 정치를 ‘아는 것’과 정치의 ‘실세계’가 다름을 경험하게 되었다. 오히려 실세계를 중심으로 내가 “아는 정치”는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희망 고문이자 동시에 정치 현실의 개선 가능성을 통해 현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한편 그 과정에서 나를 유혹한 것은 권력과 갈등에 관한 전문성 (여전히 “아는 자”로서의 인정)이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경영(admin)의 체계-구조를 ‘아는 자’ 로서 관찰하고 전략과 협상을 실천하는 자로서 전문가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에서의 앎 (정의, 자유, 평등, 평화…)의 실천이라는 믿음도 만들어나갔다.
전문가의 가면 속엔 아는 자라는 권력의 욕망이 있었다. 그것이 욕망인 이유는, 그것이 욕망 아닌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스스로 매번 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조직 안에서 인간다움 (정의, 평등, 자유, 평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도 사실도 실제로 내가 했던 의사결정과 실행도 아니었음은 당연했다. 혁신, 지속가능성, 문화…어떤 변명(알지 않으려는)의 개념을 가져와도 그 본질엔 비용절감과 소비의 극대화, 시장의 독점과 기득권의 강화 외엔 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나는 누구에게나 이해받을 수 있는 것, 추구해야 할 것을 향해, 인정받고 안정된 상태인 동시에 망각하며 마비된 상태, 동시에 만족한 것 같은 순간의 행복감 속에서 그 환상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환상은 언제나 그렇듯 성취와 동시에 몰락을 가져다 준다. 얻은 것은 이미 죽은 것이되어 썩은 냄새를 풍기고, 추구(상상)했던 의미의 향기를 덮어 버린다.
그리고 그 냄새와 함께 불안이 찾아온다. 의미는 지워지고 다시 현실의 비루함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불안 앞에 멈추어 섰다. 불안은 언제나 가지않은 길을 상상하게 하고 미지의 그곳에 또 다른 쾌락이 있을 것이라고 나를 유혹한다. 내가 가지 않은 길…. 은 없다.
유일하게 해보지 않은 것은 “길을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상상 - 욕망 - 의미 - 추구 - 성공 또는 실패 - 의미의 퇴색 - 허무 - 불안 - 또 상상…의 반복의 길을 가는 것은 무한히 인생을 통해 돌아 걸었다. 결국 멈추었고 그 불안과 우울함 속에서 하이데거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