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매일 실패합니다.
이어지는 공연들에서 배우는 매일 자기를 부정합니다. 응시의 칭찬과 비난 속에서 자신이 의도를 조율하고 조탁하지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도 자체를 부정하며 자기 안에서 이상화된 그 이미지를 낯선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니야.
결국 다 거짓이지.
다 아니지.
이게 다 뭐지.
기존 연기론 안에서 자신을 훈련시킨 배우가 그것을 부정하고 환멸과 우울 속에서 공백을 끌어안을 때 배우는 의미를 반복하고 재현하는 행위를 멈춥니다.
연기에서 의미를 지우고 배우의 말과 몸 그 자체를 관객에게 선물하고자 하지요.
그 의미없음의 공백을 선물받은 관객은 몸짓과 말의 매혹 안에서 연기를 이해하기를 멈춥니다.
정의로워야 함, 연민해야 함. 사랑해야 함. 받아들여야 함. 그럼에도 살아가야 함.
세상의 옮음과 좋음으로 익숙해진 나.
묻기를 멈추고 인정받기에 몰두하는 나.
타인에게 속하기 위해 자기를 소외시키는 나.
공백 속에서 나와 대면하며 관객은 묻고 부정하고 타자를 향했던 마음을 닫습니다.
자신을 자신으로 알았던 선명함을 의심하고 모름 속에서 머물며 침묵합니다.
관객의 침묵은 배우를 절망에 빠지게 할지 모르지만
공백을 주는 배우에게 침묵은 더 없는 환호입니다.
더 이상 의미의 매개가 아닌 표현하는 자로서
없었던 것이 표현되는 그 순간,
연극은 끝이 나고 다시 연극이 시작됩니다.